도시는 때로 너무 말이 많다.
부산이라는 도시는 유난히 그렇다. 부딪히는 파도 소리, 어시장 상인의 외침, 지하철 차창을 긁는 바람, 밤마다 켜지는 네온의 속삭임. 그래서일까. 부산 대공원은 그런 도시의 소음을 잠시 꺼두는 리모컨 같다. 나는 그 리모컨을 누르듯 부산 대공원의 입구를 지난다. 그러자 도시의 소음이 뚝, 하고 멈춘다. 그리고 숲이 말을 걸기 시작한다.
도시에 숨겨진 '거대한 호흡'
처음 부산 대공원에 왔을 때, 나는 이곳을 하나의 “공원”으로만 생각했다. 벤치 몇 개, 산책로 몇 줄, 분수와 조형물 정도로 구성된 도심 속 쉼터. 하지만 그건 크나큰 오해였다. 이곳은 단순한 공원이 아니라 ‘자연이라는 존재가 도시에게 쓴 편지’ 같았다.
부산 대공원은 약 400만㎡의 광대한 부지에 산, 들, 물, 동물, 정원, 그리고 기억까지 품고 있다. 이곳엔 이름 모를 나무들이 숲을 이뤘고, 그 나무들이 바람을 붙잡아 내게 속삭인다. “네가 숨을 쉬는 게 아니라, 우리가 너에게 숨을 주는 거야.” 나는 그 말을 듣고 처음으로 진짜 숨을 쉰다.
숲에서 길을 잃는 법
부산 대공원에서 가장 좋아하는 일은 ‘길을 잃는 것’이다. 지도도 없이, 계획도 없이 걷다 보면 어느새 정해진 길 밖으로 빠져나온다. 낙엽이 카펫처럼 깔린 오솔길을 걷고, 작은 다람쥐가 툭 튀어나오면 혼자 깔깔 웃는다. 그리고 그런 순간에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누가 나를 찾지 않는 곳, 그런 곳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한 번은 정말 길을 잃었다. 해가 지고 있었고,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어쩌면 살짝 무서웠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순간, 하늘이 오렌지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은 마치 그림처럼 나를 감쌌고, 나는 생각했다.
“아, 이건 길을 잃은 게 아니라, 길이 나를 찾아온 거야.”
자연이 만든 박물관
부산 대공원 안에는 조용한 문화 공간도 많다. 생태공원, 야외 조각공원, 그리고 무엇보다 ‘자연 자체가 예술’인 풍경. 나는 그 풍경을 보며 매번 하나의 전시회를 감상하는 기분이 든다. 오늘은 봄의 핑크색이 주제인 듯, 진달래와 벚꽃이 곳곳에서 솟아오른다. 내일은 아마 초록의 점묘화가 펼쳐지겠지.
도시의 박물관은 입장료를 받지만, 부산 대공원의 박물관은 마음만 준비되어 있다면 언제든 환영이다. 여기엔 “관람시간 종료”라는 팻말도, “조용히 해주세요”라는 표지도 없다. 대신 새들이 노래하고, 바람이 움직이며, 구름이 해설사가 된다.
부산 대공원 동물원은 아이들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많은 이들이 부산 대공원의 동물원을 ‘어린이용 코스’로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혼자 갔고, 혼자인 게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혼자니까 더 좋았다.
나는 침팬지를 오래 바라봤다. 그 눈동자 속에 무언가 오래된 기억 같은 게 담겨 있었다. 사자, 늑대, 곰… 그들을 보며 나는 인간이라는 동물의 이기심과 동시에 공감 능력을 떠올렸다. 동물원은 감상하는 곳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반추하는 거울이었다.
동물원 옆 벤치에서 한 노인이 사과를 먹고 있었고, 까마귀 한 마리가 다가왔다. 노인은 조용히 사과 한 조각을 던졌고, 까마귀는 그것을 받아먹었다. 그렇게 인간과 자연은 0.5초간 친구가 되었다. 나는 그 장면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계절이 머무는 곳
부산 대공원은 계절마다 다른 얼굴을 한다. 봄엔 꽃의 입김, 여름엔 숲의 울음, 가을엔 낙엽의 편지, 겨울엔 고요의 빛. 나는 네 계절을 모두 이곳에서 보냈다. 어떤 날은 혼자였고, 어떤 날은 누군가와 함께였고, 어떤 날은 슬펐고, 또 어떤 날은 기뻤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 감정의 결은 모두 부드러웠다. 부산 대공원은 감정을 가다듬는 연필깎이 같았다. 너무 날카롭지도, 너무 무디지도 않게 내 마음을 다듬어주는 장소.
이곳에서 나는 인간 대신 '존재'였다
부산 대공원에선 누구도 나에게 직업을 묻지 않았다.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 돈이 있는지, 없는지도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단지 존재했다. 나무와 동물, 바람과 그림자 사이에서 그저 ‘존재’라는 이유만으로 충분히 환영받았다.
서울에서 내가 늘 놓치고 있었던 건 바로 그것이었다. ‘존재의 이유’를 자꾸 스스로에게 설명해야 했던 나. 하지만 부산 대공원에서는 그런 설명이 필요 없었다. 나는 그냥, 살아 있었다.
당신도 가보라. 하지만 계획은 하지 말 것.
부산 대공원은 지도나 시간표로 설명되는 곳이 아니다. 이곳은 ‘체험’이 아니라 ‘경험’이다.
그래서 나는 당신에게 말하고 싶다.
“다음 주말에 가세요. 하지만 계획하지 마세요. 그냥 걸으세요. 그러면 부산 대공원이 먼저 당신에게 말을 걸 거예요.”
부산 대공원이 내게 가르쳐준 것들
- 길을 잃는 건, 때로는 길을 찾는 방법이다.
- 자연은 설명보다 감정으로 와 닿는다.
- 인간도 결국 자연의 일부임을 잊지 말자.
- 존재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답다.
- 고요함은 선택이 아니라 발견이다.
에필로그 – 그날의 나무는 아직 그 자리에 있을까
나는 이제 다시 도시로 돌아왔다. 부산 대공원에서 봤던 그 커다란 나무 아래 벤치, 그 위로 떨어졌던 노란 잎사귀, 조용히 흐르던 바람의 결. 그 모든 것이 여전히 그곳에 있을까?
아마도.
하지만 그보다 더 확실한 건,
그 나무와 바람과 잎사귀는 지금 내 안에도 있다는 것.
작성자 주:
이 글은 부산 대공원에서 실제로 겪은 체험과 상상, 그리고 감성적 사유를 섞어 쓴 창작 에세이입니다.
단순한 여행지가 아닌, 마음의 ‘쉼표’를 찾고 싶은 분들께 이 글이 닿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