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동구 초량동.
높은 언덕과 좁은 골목길이 이어지는 이곳,
눈에 띄지 않는 작은 길목에
'168계단'이라 불리는 특별한 장소가 있습니다.
아스라이 하늘로 이어진 것 같은 가파른 계단.
168개의 계단이 끝없이 이어진 그 길은
마치 과거와 현재를 잇는 시간의 터널처럼
특별한 감성을 품고 있습니다.
168계단의 시작
168계단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1950년대 초, 한국전쟁 직후였습니다.
전쟁으로 모든 것이 무너진 시대,
부산은 피란민들이 몰려들면서
급속히 산복도로 일대에 판자촌과 마을들이 형성되었습니다.
평평한 땅이 부족했던 탓에
사람들은 가파른 산자락을 따라
집을 짓고, 길을 만들고, 계단을 놓았습니다.
168계단도 그렇게,
삶을 지탱하기 위한 필요 속에서 태어났습니다.
처음에는 나무로 된 임시 계단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시멘트로 단단히 다져져
지금 우리가 보는 모습으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168계단, 그 가파른 아름다움
168계단은 그 이름처럼
정확히 168개의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계단 하나하나는 손바닥만큼 좁고,
경사도 매우 가파릅니다.
한 발 한 발 디딜 때마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고,
숨이 가빠질 정도로 힘든 길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 '힘듦'이
168계단을 특별하게 만듭니다.
그 힘겨운 오름 끝에서
문득 뒤돌아보면,
부산항과 남항대교, 그리고 저 멀리 펼쳐진 바다가
숨 막힐 듯 아름다운 풍경으로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고단한 걸음 끝에서 만나는 풍경.
그것은 마치 인생과도 닮아 있습니다.
힘들게 걸어왔기에, 더 값지고 찬란한 순간.
168계단의 명물, 모노레일
최근 168계단을 찾는 또 다른 이유가 생겼습니다.
바로 모노레일입니다.
2016년, 부산시는
이곳을 찾는 주민들과 관광객들의 편의를 위해
계단 옆에 모노레일을 설치했습니다.
모노레일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으며,
168계단을 따라 천천히 오르내립니다.
붉은색 모노레일은 계단 풍경과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이곳을 찾은 사람들에게 색다른 재미와 추억을 선사합니다.
천천히 움직이는 모노레일 안에서
아이들은 신나게 웃고,
연인들은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168계단의 정취를 만끽합니다.
시간여행을 떠나는 골목길
168계단은 단지 계단 하나로 끝나지 않습니다.
계단을 오르내리며 마주치는 골목들,
오래된 담벼락,
창문 틈새로 보이는 풍경들이
마치 1950~60년대로의 시간여행을 떠나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어느 집 대문 앞에는 여전히 빨랫줄이 걸려 있고,
낡은 우편함과 철제 대문은
시간이 천천히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말해줍니다.
168계단 주변 골목에는
레트로 감성의 작은 카페와 갤러리,
수공예 샵들이 하나둘 생겨나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어우러진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인생샷 명소로 떠오르다
168계단은 최근 젊은 층 사이에서
부산 인생샷 명소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특히 계단을 따라 늘어선 벽화,
모노레일을 배경으로 찍는 사진,
꼭대기에서 바라보는 항구와 바다의 모습은
SNS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또, 계단 한쪽에 마련된 작은 전망대에서는
부산항을 내려다보며
조용히 차 한 잔을 즐길 수 있는 공간도 있습니다.
계단을 오르느라 지친 몸과 마음을
잠시 내려놓기에 딱 좋은 곳입니다.
168계단이 주는 특별한 감동
168계단을 오르면서 느끼는 것은
단순한 '힘듦'만이 아닙니다.
이곳을 오르다 보면,
부산이라는 도시가 품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의 땀과 눈물, 희망과 인내를
조용히 마주하게 됩니다.
피란민들이 바닥을 딛고 다시 일어서려 했던 그 자리.
가난과 고단함 속에서도
내일을 꿈꾸며 올랐던 그 계단.
168계단은 말없이
그 모든 이야기를 품은 채
오늘도 하늘을 향해 뻗어 있습니다.
168계단 방문 정보
- 주소: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 산복도로 일대
- 이용 시간: 모노레일은 오전 9시 ~ 오후 6시 (연중무휴, 무료 이용)
- 주차: 주변 공영주차장 이용 가능
- 가는 방법: 부산역에서 도보 약 10분 또는 초량역 5번 출구 도보 15분
※ 계단이 매우 가파르니, 편한 복장과 운동화를 추천합니다.
168계단, 한 걸음 한 걸음의 의미
168계단을 오른다는 것은
단순히 높은 곳에 도달하는 일이 아닙니다.
힘겹지만 포기하지 않고 한 걸음씩 내딛으며,
자신만의 리듬으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작은 여행을 하는 것입니다.
그저 걷는 것만으로도
어느새 마음이 가벼워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조금은 달라지게 됩니다.
168계단.
그곳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한 걸음 한 걸음, 삶을 사랑하라고 속삭이는
조용한 시간의 언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