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문득, 우리는 바다를 향해 달렸다. 그 끝엔 섬이 있었고, 그 섬엔 산이 있었다. 이름은 봉래산(蓬萊山). 그 이름은 마치 오래된 동양화 속에서 방금 걸어 나온 듯, 은근하고 비밀스럽게 가슴에 스며든다. 이 산은 단순한 자연의 구조물이 아니다. 봉래산은 신화와 전설, 땅과 바람, 신성과 현실이 한데 어우러진 독특한 존재다. 아마도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이야기를 가진 산"이 아닐까.
봉래산은 어디에 있는가?
봉래산은 경상남도 통영시 욕지도에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단순한 지리적 설명으로는 봉래산의 실체를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 그곳은 어딘가 신비롭다. 해무가 깔릴 때면 산이 바다 위를 유영하는 듯한 착각이 들고, 석양이 드리우면 구름 위에 떠 있는 봉래산은 마치 신선이 노닐던 전설 속 봉래섬(蓬萊仙島)을 연상케 한다. 실은 이 산의 이름도 거기에서 비롯되었다. 고대 중국에서 불로장생의 비밀을 간직한 전설의 세 섬 중 하나가 바로 ‘봉래’였으니, 그 이름을 물려받은 이 산도 예사롭지 않다.
신화와 전설이 머무는 곳
봉래산은 욕지도의 최고봉으로, 해발 400여 미터에 불과하지만 풍경은 마치 수천 미터의 고봉처럼 장엄하다. 이 산에 오르면 360도로 펼쳐지는 다도해의 풍광이 한 폭의 수묵화처럼 펼쳐진다. 하지만 진짜 감동은 따로 있다. 전설이다.
옛 이야기 속에는 진시황이 불로초를 찾아 동쪽 바다로 사신을 보냈다는 설이 있다. 그 사신이 도착한 곳이 바로 욕지도, 그리고 봉래산이라는 전설이 전해진다. 해 뜰 무렵, 산등성이에 걸리는 햇살은 마치 선계(仙界)의 문이 열리는 듯 신비로운 빛을 발한다. 이런 장면은 아무리 최신 기술로 만든 디지털 이미지도 흉내 낼 수 없다.
바다 위에 솟은 산, 봉래산이 가진 독특함
봉래산은 흔히 말하는 ‘명산’과는 다르다. 설악산처럼 험준하지도 않고, 지리산처럼 방대한 규모를 자랑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봉래산엔 ‘고요한 압도감’이 있다. 물결 소리와 산새의 노래, 그리고 바람이 섞여 만들어내는 소리의 심포니는 대자연이 작곡한 가장 순수한 음악이다.
게다가 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시간의 경계를 허문다. 아득한 섬들이 안개 속에 잠긴 모습은 이곳이 과연 21세기의 한반도일까 의심이 들 정도로 고요하다. 그저 보고만 있어도 가슴 한편이 먹먹해진다. 바쁜 일상 속에 묻혀 있던 ‘내 안의 나’를 다시 만나게 되는 순간이다.
봉래산 오르는 길, 고행이 아닌 사색
봉래산 등산로는 난이도가 높지 않아 초보자도 쉽게 도전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길은 단순한 산행이 아닌 ‘사색의 길’이다.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 이끼 낀 돌계단, 그리고 이따금 마주치는 고요한 정적은 현대인의 피로를 말없이 감싸준다. 단지 오르는 것이 아니라, 묵은 감정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워가는 과정이다.
특히 봄과 가을, 산허리에 피어나는 야생화와 단풍은 이 산을 또 다른 얼굴로 바꿔놓는다. 그 아름다움은 누구의 눈에도, 어떤 필터에도 필요 없다. 그저 바라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봉래산, 여행자에게 전하는 메시지
누군가는 말한다. 여행은 장소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무엇’을 마주하는 것이라고. 봉래산은 그런 여행에 어울리는 산이다. 그저 SNS용 인증샷 한 장을 남기고 떠나는 곳이 아니라, 머무는 동안 자신의 마음과 풍경을 조용히 교환하는 성소와도 같다.
이 산에서 내려올 때마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얻고, 또 무언가를 놓고 간다. 어떤 이는 고민을, 어떤 이는 슬픔을, 어떤 이는 새로운 결심을. 봉래산은 말없이 그것들을 받아준다.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아무 말 없이 등을 토닥여주는 사람처럼.
이 세상에 하나뿐인 산
봉래산은 유명한 산도, 높은 산도 아니다. 하지만 그곳엔 눈에 보이지 않는 ‘이야기의 힘’이 있다. 그건 아마도 신화와 전설, 그리고 인간의 감정이 교차하는 지점에서만 느낄 수 있는 힘일 것이다.
사람들은 왜 산을 오를까? 봉우리에서 세상을 내려다보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그저 내려다보는 순간의 고요함을 느끼기 위해서일까. 봉래산은 그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다만 말없이 그 자리에 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당신에게 산은 무엇인가요?”
만약 그 대답을 아직 찾지 못했다면, 봉래산에 한 번 올라보시라.
그곳엔 '대답 대신 침묵으로 건네는 위로'가 있다.
그리고 그 위로는, 진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