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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장 철도마을, 철길 위에 피어난 낭만의 시간여행

by TR digital nomad 2025. 4. 17.

 

부산, 바다의 도시. 사람들은 주로 해운대, 광안리, 태종대 같은 이름에 익숙하다. 하지만 부산의 동쪽 끝자락, 기장의 한적한 바닷가 마을 어귀에 ‘기장 철도마을’이라는 숨은 보석이 있다는 사실은 아직 많은 이들에게 낯설다.

기장 철도마을은 여행 가이드북에 큼지막하게 실리지 않는다. 인플루언서들의 필수 방문지에도 좀처럼 이름을 올리지 않는다. 하지만 어쩌면 그래서 더욱 특별한 곳이다. 마치 오래된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곳은 시간을 잊게 만들고, 마음 한 켠에 무언가 따뜻한 것을 심어 놓는다.


🛤️ 철길 옆 마을, 일상이 풍경이 되다

기장 철도마을은 말 그대로 ‘철도와 함께 살아가는 마을’이다. 실제로 동해선 열차가 바로 마을 옆을 지난다. 초록색 덤불과 붉은 기와지붕들 사이를 유유히 지나가는 기차는 이곳의 주인공이자 배경이자 상징이다.

무심히 달려가는 기차의 뒷모습을 마을 사람들이 바라보는 풍경은, 어쩐지 한국 현대사의 어느 한 페이지를 그대로 옮겨온 듯한 느낌을 준다. 누군가는 이 마을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고, 누군가는 이 마을을 떠나기 위해 기차에 올랐을 것이다.

철길은 경계가 아닌, 오히려 삶을 잇는 끈처럼 느껴진다. 아침마다 기차 소리에 잠을 깨고, 해 질 녘이면 기차 그림자가 마을 담벼락에 길게 드리운다. 그 평범한 일상이, 어느새 풍경이 된다.


🎨 벽화로 피어난 기억의 조각들

철도마을을 걷다 보면, 수십 점의 벽화들을 만날 수 있다. 벽화는 이 마을 사람들의 손끝에서 시작됐다. 고된 어업과 농업의 삶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내기 위한 기록들이었다.

벽에는 오래된 책가방을 멘 아이가 뛰어놀고, 해 질 무렵 연탄불을 피우는 아낙의 모습이 담겨 있다. 때로는 기차에 손을 흔드는 군인 아들의 모습도, 철길 위에 피어난 들꽃도 있다.

이 벽화들은 단순한 ‘포토존’이 아니다.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이며, 기억의 조각이다. 그래서 이곳을 찾는 이들은 무언가를 ‘찍고’ 가기보다는, ‘느끼고’ 간다. 벽화 앞에서 오래도록 서 있는 사람들, 조용히 눈을 감고 벽을 쓰다듬는 노인의 손길. 그것이 철도마을이 가진 진짜 매력이다.


🌊 바다와 철도가 만나는 곳

기장 철도마을의 또 하나의 매력은 ‘바다’다. 철길을 따라 조금만 걸으면 탁 트인 바다가 나온다. 기찻길과 바다가 만나는 장면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름답다.

바다를 바라보며 걷는 철길, 기차가 지나간 뒤에 퍼지는 고요함, 그리고 바다 위로 떨어지는 해. 이 모든 것들이 완벽한 순간으로 다가온다.

간혹 해변가에서 연을 날리는 아이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여행객, 철길 옆에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도 있다. 누구나 이곳에선 주인공이 된다. 이곳에서는 ‘쉼’이 특별한 이벤트가 아닌, 당연한 감정으로 느껴진다.


🧳 시간이 멈춘 듯한 숙소, 그리고 사람들

기장 철도마을에는 크고 화려한 호텔은 없다. 하지만 그 대신,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한 감성 가득한 숙소들이 있다. 주인장이 직접 구운 고구마를 나눠주는 민박집, 골동품처럼 꾸며진 작은 게스트하우스, 낡은 책과 사진들이 가득한 북카페형 민박 등, 이 마을에는 ‘정’이 머문다.

무엇보다 이 마을의 가장 큰 매력은 ‘사람’이다.

낯선 여행자에게 먼저 말을 걸고, 차 한 잔 건네는 어르신. 고장 난 자전거를 뚝딱 고쳐주는 이웃. 마을 초입에 서서 “기차 들어온다~”라고 외치는 꼬마 아이. 이런 장면들이 ‘기장 철도마을’이라는 이름을 단순한 지명 이상으로 만든다.


📸 인스타 명소를 넘어서, 마음의 필름에 남는 곳

요즘은 어디든 ‘인생샷’을 남기는 게 중요하다고들 한다. 기장 철도마을도 물론 사진 찍기 좋은 장소다. 기차가 지나가는 순간, 벽화 앞에서, 철길 위에서, 바다를 배경으로.

하지만 기장 철도마을은 사진보다 기억에 오래 남는 마을이다. SNS 피드가 아닌, 마음의 필름에 오래도록 남는다. 잠들기 전 문득 떠오르는 풍경, 사람, 냄새, 소리.

그런 곳이 바로 이 마을이다.


✨ 마무리하며 – 사라지기 전에, 기억되기를

기장 철도마을은 변화의 중심에서 조금 벗어나 있다. 그래서 오히려 더 소중하다.

도시화의 물결은 결국 이곳도 바꿔놓을 것이다. 철길은 더 이상 기차를 태우지 않을 수도 있고, 마을은 개발의 이름 아래 모습이 바뀔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 지금 이 순간, 기장 철도마을은 존재한다. 철길 위에 낙엽이 지고, 바람이 벽화를 스친다. 어딘가에서 기차의 기적 소리가 들려온다.

그것만으로 충분히 아름답다. 사라지기 전에, 우리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머물기를.


[여행 팁]

  • 📍 위치: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대라리 일대
  • 🕰️ 추천 시간대: 해 질 무렵~해넘이 직전
  • 🚋 열차 운행 시간 확인은 필수! 기차 지나가는 타이밍을 놓치면 아쉽다
  • 📸 포인트: 벽화골목 / 철길 위 바다 / 열차 지나가는 순간 / 해변 근처 포구
  • ☕ 근처 카페: 작은 북카페 ‘기찻길 책방’, 로스터리 카페 ‘길 위의 커피’

기장 철도마을은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머무를 수 있는 장소다.
그 마음을, 잠시 이곳에 내려놓고 가도 괜찮다.